설교 : 젊은이예배(홀리웨이브)

어떤 가정의 고통 테라피

설교본문 :룻기 1:19-22 설교자 : 이동원 원로목사 작성일2014-05-04

본문

말씀본문 (룻기 1:19-22)

19 이에 그 두 사람이 베들레헴까지 갔더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로 말미암아 떠들며 이르기를 이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20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21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22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지난 4월 민족과 수많은 가정들의 꿈이 깨어져 버린 비극 앞에서 우리는 본래의 일상적이고 행복한 가정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를 묻습니다. 그 해답을 위해 사사시대 모든 것을 차례로 다 상실한 한 고통 받던 가정의 치유와 회복의 과정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나오미와 그녀의 가정이 경험한 고통 테라피에서 오늘 우리 민족과 고통스런 가정들의 치유의 희망을 찾고 싶습니다. 1. 고통의 현실을 인정해야 합니다.(19~20절) 본래 나오미 라는 이름의 뜻은 기쁨 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나를 마라 라 부르라고 말합니다. 마라 는 괴로움 이란 뜻입니다. 이것은 현실에 대한 그녀의 용기있는 인정이었습니다. 치유는 언제나 과거와의 용기 있는 대면과 인정 없이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고통스런 현실에 대한 인정이 빠르면 빠를수록 치유는 앞당겨 질수가 있습니다. 우리 역시 이제 조심스럽게 고통스런 현실을 인정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산자들의 미래를 위해서도 그리고 죽은 자들이 살고 싶어 했던 그 푸른 미래를 위해서도 말입니다. 2. 고통의 섭리를 수용해야 합니다.(21절) 하나님이 섭리적 고통을 허용하신 분이라고 믿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그 고통에서 다시 우리를 구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습니다.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붙들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으로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고통을 하나님의 뜻으로 수용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궁극적인 결론을 향해 준비할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3. 치유의 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22절) 성경의 하나님은 언제나 야훼 라파(치유의 하나님) 이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치유 받을 자리에 있지 않는 한 그의 회복의 역사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비록 고향 사람들에게 수모를 당할지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자리로 돌아가는 결단을 감행해야 합니다. 우리가 끝이라고 생각되는 곳에 하나님은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새 삶의 마당을 준비하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