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지안 앵커>전국적인 공중보건의 부

페이지 정보

카테고리 1주차 mission | 작성 25-11-29 07:48 작성자 : sans339

본문

통화후자동문자 모지안 앵커>전국적인 공중보건의 부족으로 농어촌 의료 취약 지역 진료소가 잇따라 문을 닫고 있습니다.그런데 최근에는 이같은 일이 도시 지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강재이 기자입니다.강재이 기자>(장소: 대구 곽병원 별관 대구희망진료소)눈에 잘 띄지 않는 건물 한편.복도 끝 비품이 쌓인 좁은 공간이 있습니다.문 앞에는 '대구희망진료소 진료실'이라는 작은 문패만 남아 있습니다.강재이 기자 jae2e@korea.kr"이곳은 불과 몇 달 전까지 쪽방 주민과 노숙인들이 매일 드나들던 진료실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진료 장비도 치워지고, 박스만 쌓인 채 방치된 상태입니다."대구희망진료소는 공중보건의 1명과 간호사 2명이 노숙인과 쪽방촌 주민들을 위해 진료해온 곳입니다.몇 년간 진료소 단골이었단 주민들을 만났습니다.인터뷰> 쪽방촌 주민"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의사 선생님들 계시면 여기서 바로 진료받고, 치과 있는 병원에도 안 가도 되고 훨씬 낫지요."진료소는 돈 걱정 없이 아픈 사정을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인터뷰> 쪽방촌 주민"공보의 선생님이 이제 맨 처음에 두세 번 보니까. 커피 한 잔 하세요 하고 커피 한 잔씩 하다 보니까 제가 아픈데도 좀 참았던 거, 밑에 있던 거를 내 이야기를 한단 말이에요. 근데 병원 의사 선생님한테 그 얘기를 못 해요. 내가."하지만 지난 4월, 유일한 공중보건의가 전역하면서 진료가 중단됐습니다.함께 파견됐던 간호사들도 각자 소속 기관인 노숙인지원센터와 쪽방상담소로 복귀했습니다.현재는 간단한 처치와 상담만 할 뿐, 의사가 필요한 진료와 처방은 할 수 없습니다.인터뷰> 박주희 / 대구희망진료소 간호사"예전에는 병원 오시면 궁금하신 거라든지, 이런 부분을 공보의 선생님하고 상담도 하시고. 병원 가시기 전에 필요한 검사라든지 이런 걸 다 하셨는데, 지금은 그게 안 돼서. 제가 상담해 드리는 건 한계가 있어서."주민들도 다시 쪽방 골목으로 돌아갔습니다.강재이 기자 jae2e@korea.kr"진료소에서 걸어서 5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 쪽방촌입니다. 몸이 아프면 가장 먼저 찾던 진료소가 사라지자, 쪽방 주민들은 다시 홀로 아픈 밤을 견뎌야 합니다."지난해 월평균 200건 이상이던 방문은 현재 절반 수준으로 줄었습니다.인터뷰 우원식 국회의장(가운데)과 김병기 더불어민주당(왼쪽),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장실에서 열린 여야원내대표 회동에서 기념촬영을 마친후 각자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사진=뉴스1 "되는 것도 없는데 뭘 사진만 자꾸 찍어요?"27일 오전 국회의장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여야 원내대표 회동을 앞두고 기념사진을 권하자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송 원내대표는 한 차례 사진 촬영을 거부했으나, 우 의장이 손을 이끌어 일으켜 세우자 마지못해 뒷짐을 진 채 카메라 앞에 섰다.이날 회동은 여야 원내대표와 원내수석부대표가 참석한 이른바 '2+2 회동'이었다. 본회의 상정 안건과 비쟁점 법안 처리 등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고, 결과는 부분적 합의에 도달했다.사진 촬영을 둘러싼 짧은 실랑이는 지금 국회가 처한 '단절된 여야'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송 원내대표의 말처럼 최근 여야는 '되는 일도 없는데' 의장실에 모이는 일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여야가 스스로 합의의 밑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사이, '국회의장 주재 회동'이 일상화되고 정작 합의에 이르는 힘은 점점 사라지는 구조다.◇'결정적 순간'에 열리던 의장 회동인데…'상실 회의실' 된 의장실당초 국회의장 주재 여야 회동은 말 그대로 '결정적인 순간'에만 등장했다. 과거엔 여야가 물밑 협상과 공개 협상을 거듭한 뒤, 사실상 합의에 다다른 뒤에야 의장 주재 회동이 마지막에 등장하는 패턴이 더 익숙했다.여야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 수석부대표 등이 여러 차례 2+2, 3+3 회동을 통해 문구와 숫자를 조정해 놓으면, 마지막에 국회의장이 나서 일정과 표결 방식을 정리하는 식이다. 국회의장실은 '최종 조정 테이블' 혹은 '결정의 방'에 가까웠다.그만큼 의장 본인에게도 부담이 컸다. 자신이 주재하는 회동이 열리면 '뭐라도 결론을 내야 한다'는 압박이 뒤따랐다. 그래서 과거 정치권에서는 "의장까지 나섰다"는 말이 곧 '이제 진짜 막판'이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곤 했다.그런데 어느 때부터 국회 풍 통화후자동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