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변화 외면하는 보수주의가 여전히 주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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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1주차 mission | 작성 25-04-26 20:24 작성자 : or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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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변화 외면하는 보수주의가 여전히 주류... 프란치스코 유산, 역사적 유물로 남을 수도▲ 엄지손가락 추켜세운 교황 방한 4일째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 8월 17일 충남 서산시 해미읍성에서 열리는 아시아 청년대회 폐막미사에서 참석자들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고 있다.ⓒ 교황방한위원회폐렴으로 고생하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부활절에 맞추어 천상 가정에 들었다. 이제 그곳에서 주님을 지복직관하는 기쁨으로 영원한 안식을 누릴 것이다. 그러나 그가 떠난 이 세상의 교회는 전혀 평안하지 않다. 그것이 문제다.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 교회 역사에서 최초로 유럽 이외 국가인 아르헨티나 주교 출신이라는 기록을 세운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부모가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이기에 엄밀히 말하자면 순수 남미 출신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의 유창한 이탈리아어는 교황청을 지배하는 이탈리아 '세력'과의 소통에는 커다란 장점이 되었지만 그가 꿈꾸던 교회 개혁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사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베네딕토 교황에 앞서 그 자리에 오를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러나 교황청 내부 암투의 결과 일단 독일 출신 라칭거 추기경을 베네딕토 16세로 추대하는데 합의를 이루는 바람에 베네딕토의 후임자가 된 것이다. 베네딕토 16세도 교회의 쇄신, 특히 교황청의 비리 척결을 위해 노력했지만 독일 출신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스스로 물러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처했었다. 바티칸 내의 이른바 '이탈리아 사단'을 독일 출신 베네딕토 16세가 단기필마로 맞서기에는 중과부적이었다.프란치스코 교황의 '깨어 있는 정신'가톨릭 교회 진보진영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깨어 있는 정신'에 큰 기대를 걸었다. 처음에는 그 기대에 부응하는 변화의 바람이 교회 안에 불기 시작했다. 보수주의자였던 요한 바오로 2세와 극보수의 선두에 섰던 베네딕토 16세가 이루지 못한 이른바 '교회 쇄신'이 비로소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는 이들이 많았다.사실 가톨릭 교회의 쇄신의 역사는 길다. 19세기말 가톨릭 교회의 게토화에 위기의식을 느낀 바티칸은 이른바 '아조르나멘토'를 기치로 삼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개최하였다. 이 공의회를 소집한 요한 2[주장] 변화 외면하는 보수주의가 여전히 주류... 프란치스코 유산, 역사적 유물로 남을 수도▲ 엄지손가락 추켜세운 교황 방한 4일째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 8월 17일 충남 서산시 해미읍성에서 열리는 아시아 청년대회 폐막미사에서 참석자들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고 있다.ⓒ 교황방한위원회폐렴으로 고생하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부활절에 맞추어 천상 가정에 들었다. 이제 그곳에서 주님을 지복직관하는 기쁨으로 영원한 안식을 누릴 것이다. 그러나 그가 떠난 이 세상의 교회는 전혀 평안하지 않다. 그것이 문제다.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 교회 역사에서 최초로 유럽 이외 국가인 아르헨티나 주교 출신이라는 기록을 세운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부모가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이기에 엄밀히 말하자면 순수 남미 출신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의 유창한 이탈리아어는 교황청을 지배하는 이탈리아 '세력'과의 소통에는 커다란 장점이 되었지만 그가 꿈꾸던 교회 개혁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사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베네딕토 교황에 앞서 그 자리에 오를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러나 교황청 내부 암투의 결과 일단 독일 출신 라칭거 추기경을 베네딕토 16세로 추대하는데 합의를 이루는 바람에 베네딕토의 후임자가 된 것이다. 베네딕토 16세도 교회의 쇄신, 특히 교황청의 비리 척결을 위해 노력했지만 독일 출신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스스로 물러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처했었다. 바티칸 내의 이른바 '이탈리아 사단'을 독일 출신 베네딕토 16세가 단기필마로 맞서기에는 중과부적이었다.프란치스코 교황의 '깨어 있는 정신'가톨릭 교회 진보진영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깨어 있는 정신'에 큰 기대를 걸었다. 처음에는 그 기대에 부응하는 변화의 바람이 교회 안에 불기 시작했다. 보수주의자였던 요한 바오로 2세와 극보수의 선두에 섰던 베네딕토 16세가 이루지 못한 이른바 '교회 쇄신'이 비로소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는 이들이 많았다.사실 가톨릭 교회의 쇄신의 역사는 길다. 19세기말 가톨릭 교회의 게토화에 위기의식을 느낀 바티칸은 이른바 '아조르나멘토'를 기치로 삼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개최하였다. 이 공의회를 소집한 요한 23세 교황이 처음 내세운 아조르나멘토는 이탈리아 말로 쇄신, 현대화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다. 가톨릭 교회가 구 체제에 안주하여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케케묵은 고준담론이나 읊어대고 뒤쳐지면서 교회가 역사와 사회의 중심에서 주변으로 밀려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이런 쇄신의